
밤에 얼음을 꺼내려고 냉동실 문을 열었습니다.
차가운 불빛 아래 하얀 것이 보였습니다.
서랍 가장자리에도, 안쪽 벽에도 성에가 붙어 있었습니다. 어제까지는 분명 평범한 냉동실이었는데, 하룻밤 사이 작은 빙벽을 세워 놓았습니다.
냉동실이 허락도 없이 작은 겨울왕국을 짓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이럴 때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하나입니다.
“냉장고가 고장 난 건가?”
하지만 성에가 생겼다고 해서 곧바로 고장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에는 대개 냉동실 안으로 들어온 수분이 차가운 벽과 선반에 붙어 얼어버린 흔적입니다.
말하자면 성에는 물이 남긴 발자국입니다.
성에를 만든 수분은 어디에서 왔을까
냉동실 문을 열면 실내의 따뜻한 공기가 들어갑니다.
그 공기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수분을 머금고 있습니다. 수분이 차가운 선반과 벽에 닿으면 물방울이 되고, 시간이 지나면 서리와 성에로 변합니다.
습도가 높은 날에는 이 과정이 더 빨라집니다.
여름철이나 장마철에 냉동실 성에가 유난히 잘 생기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문을 자주 열거나 오래 열어두었다면 성에는 더 신이 납니다.
문을 자주 열거나 오래 열어두면, 겨울왕국의 얼음 마법이 퍼지듯 성에가 냉동실 벽을 타고 번져 갑니다.
음식 포장지가 문 사이에 끼어 있거나 서랍이 끝까지 들어가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겉으로는 문이 닫힌 것처럼 보여도 작은 틈이 남습니다. 그 틈으로 따뜻한 공기가 계속 들어오면 냉동실은 밤새 수분을 얼리는 일을 하게 됩니다.
성에가 생긴 자리가 힌트다
성에는 생긴 위치에 따라 원인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식품 표면이나 선반에 얇은 서리가 생겼다면 문을 여닫는 동안 들어온 습기의 영향일 가능성이 큽니다.
문 가장자리와 고무패킹 주변에 성에가 몰려 있다면 문이 완전히 닫히는지 먼저 살펴보는 편이 좋습니다.
냉동실 바닥에 얼음이 생겼다면 문을 오래 열어두었거나, 녹은 물기가 아래로 흘러 다시 얼지는 않았는지 살펴봅니다.
다만 위치만 보고 원인을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성에는 탐정 드라마의 범인처럼 친절하게 이름표를 달고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디에 생겼는지는 ‘정답’이 아니라 ‘첫 번째 단서’ 정도로 보는 것이 좋습니다.
성에를 긁어내기 전에
먼저 문이 제대로 닫히는지 확인합니다
냉동식품 봉투의 귀퉁이가 튀어나와 있지 않은지, 서랍이 레일 끝까지 들어갔는지 살펴봅니다. 작은 만두 봉지 하나가 냉동실 문을 밤새 붙잡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만두는 아무 말이 없지만 가끔 큰일을 합니다.
고무패킹도 천천히 살펴봅니다.
패킹이 접히거나 들뜬 곳은 없는지, 음식물이나 물기가 묻어 있지는 않은지 확인합니다. 깨끗한 천으로 닦은 뒤 물기를 남기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얇게 낀 성에는 깨끗한 젖은 행주로 닦고, 마른 행주로 한 번 더 닦아냅니다.
이미 단단한 얼음층이 생겼다면 칼이나 송곳으로 떼어내려고 서두르지 마세요. 얼음보다 냉동실 안쪽 벽이 먼저 상처를 입을 수 있습니다.
두꺼운 얼음은 보관 중인 식품을 안전하게 옮긴 다음, 해당 제품 설명서에 나온 제상 방법을 따르는 편이 안전합니다. 냉장고마다 구조와 전원 차단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이 부분은 우리 집 제품의 설명서가 최종 결정권자입니다.
설명서는 평소에는 조용하지만 이런 날 갑자기 집안의 최고 어른이 됩니다.
닦았는데 다시 생긴다면
성에를 제거한 뒤 며칠 지나지 않아 같은 자리에 두껍게 다시 생긴다면 단순한 습기 문제만은 아닐 수 있습니다.
문이 끝까지 닫히는데도 성에가 반복되거나 고무패킹이 찢어졌거나 변형된 경우 에는 점검이 필요합니다.
냉동식품이 예전처럼 단단히 얼지 않거나 냉기가 약해진 느낌이 함께 나타나는지도 살펴보세요.
냉장고가 거의 쉬지 않고 작동하거나, 내부 온도가 충분히 내려가지 않으면서 물기와 성에가 반복된다면 온도 센서·팬·제상장치 같은 부품 상태를 확인해야 할 수 있습니다.
이때는 성에만 닦으며 버티기보다 제조사 서비스센터에 점검을 요청하는 편이 낫습니다.
성에는 결과일 뿐이고, 원인은 안쪽에 숨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작은 겨울을 막는 방법
냉동실 문은 필요한 물건을 생각한 다음 여는 것이 좋습니다.
문을 열어놓고 “분명 여기 있었는데…” 하며 기억을 더듬는 동안에도 따뜻한 공기는 성실하게 들어옵니다.
식품은 문을 밀어내지 않도록 정리하고, 포장지 끝이 밖으로 나오지 않게 넣습니다.
물기가 많은 식품은 밀폐하고, 열기를 어느 정도 식히되 실온에 오래 두지는 않습니다. 고무패킹과 문이 맞닿는 부분도 가끔 닦아 물기와 이물질을 없애주세요.
냉동실을 채우더라도 문이 닫힐 여유와 냉기 순환 공간은 남겨둡니다.
성에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돌아보면 문이 아주 조금 덜 닫혔던 밤이 있었고, 물기 묻은 식품 봉지가 선반에 놓였고, 무엇을 꺼낼지 고민하며 문을 오래 열어둔 아침이 있었습니다.
냉동실은 말이 없습니다.
대신 벽에 하얀 흔적을 남깁니다.
그 흔적을 너무 무서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먼저 문이 제대로 닫히는지 보고, 식품의 위치를 보고, 고무패킹을 닦아보면 됩니다.
그래도 작은 겨울이 자꾸 돌아온다면, 그때는 냉장고가 보내는 점검 신호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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